르 블랑 칸쿤 첫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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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가 들수록 가족과 함께하는 시간이 정말 소중하게 느껴진다. 바쁜 일상 속에서 서로의 얼굴을 제대로 마주하고 대화할 기회가 점점 줄어드는 것 같아서, 3년 전부터는 무리를 해서라도 1년에 한 번은 꼭 가족여행을 다녀오기로 마음먹었다. 올해도 그 약속을 지키기 위해 칸쿤으로 왔다. 칸쿤 도착 후 첫 이틀은 여인의 섬(Isla Mujeres) 일정이 있어서 일반 호텔에 머물렀고, 셋째 날 아침부터 드디어 기대했던 르 블랑 칸쿤으로 자리를 옮겼다.

르 블랑은 2년 전 다녀왔던 질랄라의 거의 두 배 가격이었다. 솔직히 가격을 보고 살짝 압도됐지만, 올인클루시브 방식이라 호텔비 외에 식사, 음료, 시설 이용 비용이 거의 들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생애 한 번은 제대로 된 럭셔리 리조트를 경험해 보자”는 마음으로 크게 질렀다. 기대 반, 설렘 반으로 호텔에 도착하는 순간부터가 이미 특별했다.

아침 일찍 택시를 타고 르 블랑으로 이동했다. 올인클루시브 호텔의 가장 큰 장점은 체크인 시간 전이라도 풀, 레스토랑 등 대부분 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둘러 출발했다. 우리는 수영복과 선로션 같은 바로 쓸 물건들은 미리 백팩에 따로 챙겨놓았다. 짐은 프론트에 맡기고 가볍게 움직일 계획이었다.

로비에 들어서자마자 직원이 미소 지으며 다가왔다. 차가운 수건으로 손을 닦게 해주고, 시원한 웰컴 드링크를 건넸다. 이어서 따끈하게 데운 휴대용 찜질기를 우리 모두의 어깨에 살포시 올려주었다. 아내에게는 싱그러운 꽃 한 송이도 함께였다. 아내는 그 세심한 배려에 “역시 일류 호텔은 다르다”며 얼굴 가득 환한 미소를 지었다. 덥고 피곤한 몸으로 도착한 우리에게 차가운 수건과 따뜻한 찜질기, 꽃 한 송이가 주는 감동이 꽤 컸다.

직원이 짐을 맡아주며 “방이 준비되는 대로 직접 가져다 드리겠다”고 말했다. 우리는 가벼운 차림으로 체크인을 마쳤다. 체크인 데스크에서 손목밴드를 채워주는데, 이 밴드가 객실 키 역할은 물론 풀, 식당, 스파 등 모든 시설 이용권까지 겸한다고 설명해 주었다. 각 층 엘리베이터 옆에는 버틀러가 상주하고 있어서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 도와준다고 하니, 처음엔 이런 서비스가 조금 과하다 싶기도 했지만 곧 편리함을 느꼈다.

체크인 후 게스트 서비스 직원과 잠시 상담을 했다. 회원권 프로모션 세미나를 1시간 반 정도 들으면 상당한 리조트 크레딧을 준다는 제안이었다. 르 블랑이 속한 호텔 체인에서 주로 하는 방식인 것 같았다. 다음 날 아침 6층에서 8시 45분에 만나 이탈리안 레스토랑에서 식사를 하며 프레젠테이션을 듣고, 가입 여부는 자유롭게 결정하면 된다고 했다. 우리 부부는 4박 예약으로 이미 500불 리조트 크레딧을 받은 상태였고, 세미나 참석 시 추가 750불 크레딧과 200불 택스까지 호텔이 커버해 준다고 하니 꽤 쏠쏠한 오퍼처럼 느껴졌다. 아들은 2박이라 기본 크레딧은 없었지만 세미나를 들으면 500불 크레딧을 받을 수 있다고 했다. 다음 날 아침에 듣기로 하였다.

아직 아침을 제대로 먹지 못한 상태라 로비에 있는 뷔페 레스토랑 ‘Blanc’으로 바로 들어갔다. 다양한 메뉴가 준비되어 있었지만, 여행 첫날이라 가볍게 먹으며 호텔 분위기를 천천히 느껴보았다.

식사를 마치고 해변 쪽 메인 풀(Sol Pool)로 나갔다. 자쿠지 옆 비치베드가 많아서 빈자리를 쉽게 찾을 수 있었다. 수건을 침대 위에 올려두고 자리를 표시했다. 잠시 후 직원이 다가와 얼음이 가득 담긴 통에 생수 두 병을 꽂아 가져다주었다. 작은 행동 하나가 “이 자리는 이제 여러분 것입니다”라고 말해주는 듯해서 기분이 좋았다.

사실 르 블랑에 오기 한 달 전, 호텔에서 이메일로 연락이 왔을 때 카바나 가격을 미리 알아봤었다. 2년 전 질랄라에서 카바나를 40불 정도에 빌려 정말 만족했던 기억 때문이었다. 질랄라는 사람이 많고 비치베드에 파라솔도 부족해서 카바나가 큰 도움이 됐었다. 그런데 르 블랑 카바나는 하루에 580불이라는 가격을 듣고 눈물을 머금고 포기했다. 막상 와서 보니 다행이었다. 비치베드마다 커다란 파라솔이 잘 갖춰져 있고, 사람이 질랄라에 비해 상대적으로 적어서 한산하고 여유로운 분위기였다. 카바나 없이도 충분히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호텔을 여기저기 둘러보다가 룸이 준비됐다는 이메일을 받았다. 프론트로 가서 손목밴드로 키를 활성화하고 방으로 올라갔다. 방에 들어서자마자 미니바가 눈에 들어왔다. 서랍 속에는 다양한 과자와 견과류가 넉넉하게 들어 있었고, 냉장고에는 시원한 맥주, 콜라, 생수가 빼곡했다. 벽에는 위스키, 보드카 등 네 종류의 술병이 마개가 달린 채 거꾸로 꽂혀 있었다. 손잡이를 돌리기만 하면 바로 컵에 술이 따라지는 편리한 구조였다. 테이블 위에는 와인 한 병과 데킬라 한 병도 놓여 있었다. 우리는 독한 술을 거의 마시지 않아 건드리지 않았지만,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정말 만족할 만한 구성이었다.

방은 전체적으로 고급스러웠지만, 중간에 단차가 있어서 움직일 때 조금 불편했다. 아들 방은 우리보다 낮은 카테고리인 Partial Ocean View였는데, 가격도 더 저렴했다. 그런데 막상 보니 아들 방이 우리 방보다 훨씬 좋아 보였다. 단차도 없고, 특히 창문이 달랐다. 아들 방은 한쪽 벽 전체가 통창이었던 반면, 우리 방은 벽 가운데 부분에만 창문이 있어서 채광과 개방감에서 차이가 꽤 났다. 비싼 방을 잡았다고 꼭 더 좋은 방이 나오는 건 아니라는 걸 새삼 느꼈다.

짐을 풀고 수영복으로 갈아입은 뒤 다시 메인 풀로 내려갔다. 따뜻한 햇살 아래 칵테일을 한 잔 들고 물속에서 여유롭게 시간을 보냈다. 이 순간이 올인클루시브의 진짜 맛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느새 점심때가 되어 2층 멕시칸 레스토랑 ‘Terraza’로 갔다. 식당에 앉아 주변을 보니 대부분 사람들이 피자를 먹고 있었다. 멕시칸 레스토랑에서 피자라니 조금 의아했지만, 우리도 음식을 시켜 먹어보니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피자를 선택하는지 알 것 같았다. 그나마 피자가 가장 먹을 만했던 것 같다. 르 블랑을 선택한 중요한 이유 중 하나가 식당과 스파의 퀄리티였는데, 솔직히 점심은 기대만큼 만족스럽지 않았다. 2년 전 질랄라에서도 음식이 크게 인상적이지 않았던 기억이 떠올랐다.

점심 후 호텔 시설을 더 자세히 둘러보았다. 호텔 옆쪽에 지붕은 있고 벽은 없는 오픈 스타일 공간에 피클볼 코트가 있었다. 코트 주변에는 이구아나가 정말 많아서 처음엔 신기했다. 코트 주위에 공이 밖으로 나가지 않도록 네트가 설치되어 있었는데, 네트에 뚫린 작은 구멍으로 공이 자꾸 빠져나가서 번번이 밖으로 나가 공을 주워 와야 했다. 

아내가 맨발로 잠깐 피클볼을 치다가 발바닥이 새까맣게 변했다. 순간 당황했지만, 근처 물로 씻어내니 금방 깨끗해져서 함께 웃으며 넘어갔다. 피클볼 코트 뒤편으로는 또 다른 풀장이 있었고, 그 너머에는 악어가 사는 호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칸쿤의 호텔 지구가 원래 석호 지대라 악어가 출몰하는 게 흔한 일이긴 했지만, 멀리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신기하면서 살짝 긴장됐다.

오후 내내 풀과 피클볼을 오가며 가족과 함께 놀았다. 따뜻한 햇살과 시원한 바람, 웃음소리가 어우러져 행복한 시간이 흘렀다.

저녁은 미리 예약해 둔 호텔의 시그니처 레스토랑 ‘Lumiere’로 갔다. 르 블랑에서 가장 유명한 프랑스식 파인다이닝이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메뉴에 푸아그라와 에스카르고가 있어서 시키려 했는데, 직원이 “오늘은 그 메뉴가 준비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메뉴판에 버젓이 적혀 있는데 오늘만 안 되는 건지, 아니면 비싼 재료라 올인클루시브 손님들에게는 사실상 제공하지 않는 건지는 알 수 없었다. 결국 다른 메뉴를 먹었지만, 맛도 기대만큼 나오지 않아 아쉬움이 남았다.

저녁 식사 후 지하 피트니스 센터로 내려갔다. 의외로 우리 가족만 이용하고 있어서 한 시간 내내 가족끼리만 운동을 즐겼다. 넓은 헬스장을 통째로 빌린 듯한 특별한 기분이었다.

르 블랑에서의 첫날은 기대와 현실이 살짝 어긋나는 순간들도 있었지만, 가족과 함께한 모든 순간이 소중했다. 비싼 가격만큼 모든 것이 완벽할 거라 생각했는데, 음식처럼 아쉬운 부분도 있었고, 미니바의 풍성함과 작은 서비스처럼 만족스러운 디테일도 많았다. 이런 작은 에피소드들이 모여 여행의 추억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는 것 같다.

내일은 오늘보다 조금 더 여유롭고 즐거운 하루가 되기를 기대하며, 피곤하지만 행복한 마음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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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 이쁜쭈니
    March 29, 2026 · 7:44 am

    오~글로만 읽어도 럭셔리함이 느껴져요! 다음에 가족여행은 꼭 이 곳으로 가고싶어요. 이젠 아들이 성인이되어서 방을 따로 잡으셨나보네요..ㅎㅎ 우린가면 (성인)아들이랑 같은 방으로..